2017.09.No.15

문학과 예술

엄현옥


무등의 안개

엄현옥

 

수직의 나무 팻말이 드문드문 나타났다. 산길을 따라 자리잡은 조릿대의 초록이 윤기를 더했다. 급경사는 아니었으나 꾸준한 오르막이었다. 팻말의 숫자가 ‘무등산 옛길’ 27, 34를 스치고 40에 이르자 거짓말처럼 ‘서석대’가 나타났다. 깔딱고개나 너덜지대와는 다른 등산로인 것이 다행이었다. 오르막은 끝났다. 그래, 모든 일에는 끝이 있는 법이지.

서석대와 입석대를 병풍처럼 두르고 발아래 펼쳐질 정경을 기대하며 오른 길이었다. 정상에 오르면 한국의 ‘스톤헨지’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해발 1,100m 산정에서 뜬금없는 주상절리가 웅장하게 버티고, 정상에서 보기드문 평원이 펼쳐지리라고, 때가 가을이라면 백마능선에서 바람따라 시름없이 펼쳐지는 억새의 춤사위를 볼 수 있을테니 그 때 다시 오자고…. 초행인 친구에게 찬사를 늘어놓지 않았던가. 간밤 저녁 일정도 마다한 채 잠자리에 들어 이 새벽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서울 주변의 악산(嶽山)에 기가 눌린 나는 토산(土山)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그런데 안개라니. 그곳엔 나보다 먼저 올라온 안개가 주둔하고 있었다. 사단 병력이었다. 밤샘 행군이라도 한 것일까. 너른 벌판이 우유빛으로 수런거렸다. 무등의 안개는 초목에서도 바위에서도 소리없이 피어올라 몸을 비볐다. 내 몸도 삼투 작용을 하는지 안개 입자가 얼굴이며, 목덜미로 파고들었다. 그것들을 훠이훠이 내치다가 지쳐 나도 안개가 되어버렸다.

서석대에서 정면 대결한 안개에는 김승옥과 기형도의 문장이 담겨 있었다. 더 이상 안개에 대한 수사를 늘어놓을 생각은 하지 말라며 은근히 협박했다. 나는 단번에 굴복해버렸다. ‘내 것이 아닌 열망’이 탐난다 하여 그것들을 따라잡을 수사가 가능키나 한 일이던가.

안개는 가히 무등의 특산품이었다. 시야를 가린 안개로 나는 세상과 잠시 단절되었다. 내가 어떤 경로를 통해 그곳에 이르렀는지, 왜 그 시간에 안개 속에 서 있는지 조차 잊었다. 그 아침 짙은 안개 속에서 억새가 넘실댔다. 환영이었다. 지금 그것이 단숨에 걷힌다면 초록 물결이 뒤덮였겠지.

나는 정상석의 글자만은 지키려는 마음에 손사래로 안개를 몰아냈다. 의연한 초서체로 쓰인 ‘서석대(瑞石臺)’가 얼굴을 드러내며 ‘상서로운 돌’임을 상기시켰다. 견줄만한 상대가 없어 등급을 매기지 못해 무등(無等)이라지. 중생대 백악기, 화산폭발의 흔적이라는 주상절리는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화산 분출 시 가늠할 수 없는 열기로 지형을 뒤엎더니 이제는 거대한 돌기둥이 되어 침묵한다. 의병장 고경명 장군은 그의 산행기에서 ‘네 모퉁이를 반듯하게 깎고 갈아 층층이 쌓아올린 것이 석수장이가 먹줄을 튕겨 다듬어서 포갠 모양’이라고 묘사했던가.

내 속에서도 간헐적으로 화산이 폭발한다. 심해어처럼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가 용암을 내뿜고 떨어져나간 돌덩이들은 너덜지대를 이룬다. 그럴 때면 화산재를 먼 곳까지 날리지 않으려 무진 애를 쓴다.

화산 뿐이랴. 숱한 안개 숲에서는 길을 잃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내 의식을 뒤덮은 안개를 헤치며 여기까지 왔다. 그것조차 삶의 과정이었다. 그 길은 예측된 것이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놓인 길이기도 했으나 언젠가는 걷히기 마련이었다.

삶은 예측을 불허한다.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삶의 이유가 아닐까. 예측은 생각만큼 유용하지 않다.

하산을 재촉하자 안개도 느리게 행장을 꾸렸다, 어디론가 떠날 모양이었다. 나는 굳이 그의 뒷모습에 연연하지 않았다. 안개 걷힌 산정을 마음 속에 남겨두었다. 보고 싶은 정경 하나쯤 안개 속에 간직하고 사는 일도 괜찮은 일이다.

안개는 때가 되면 걷히리라. 삶은 안개가 사라지기를 기다려 걷는 길이 아니라 그 속을 헤치는 과정이 아니던가. 안개보다 먼저 하산 하는 길, 발걸음이 가벼웠다.

 

* 엄현옥 약력

- 장흥 출생. 수필가, 문학평론가

- 인천문학상, 신곡문학상 본상, 한국산문문학상

- 작품집 ; 『다시 우체국에서』, 『나무』, 『작은 배』, 『발톱을 보내며』 등

- 한국문인협회 이사, 국제펜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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